요즘은 어떤 걸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예전보다 훨씬 쉬워졌다.
유튜브에서 좋아하는 채널만 구독하고 쇼핑몰은 내 스타일을 너무 잘 알고 있고 음악 앱은 내가 미처 검색하지 않은 곡까지 알아서 틀어준다.
나의 취향이라고 불리는 것이 점점 더 정교하게 포장되고 매끄럽게 제안된다.
물론 이 모든 건 알고리즘의 힘이다 추천은 무작위가 아니고 데이터는 우연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꼭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반복되는 추천이 취향을 만들어간다는 건 결국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 글에서는 반복적인 추천이 어떻게 취향을 형성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1. 내 반응으로 만들어진 또 다른 나
요즘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비스들이 먼저 알아차린다.
처음엔 무심코 클릭한 영상 관심 없이 스크롤하다 머문 쇼핑몰 페이지가 어느새 내 취향을 설명하는 단서가 된다.
그 작은 반응들이 모여 알고리즘은 나를 그려내기 시작한다 마치 내가 거울 앞에 서 있지도 않았는데 거울은 이미 내 모습을 비추고 있는 느낌이다.
내가 무슨 콘텐츠에 오래 머물렀는지 무엇을 검색했고 어떤 키워드에 반응했는지를 기준 삼아 알고리즘은 끊임없이 나를 예측한다.
그 결과 ‘어 이거 내가 좋아할 줄 어떻게 알았지?’라는 순간이 자주 생긴다. 처음엔 신기하고 편리하지만 어느 순간 약간의 찝찝함도 느껴진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알고리즘은 먼저 알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피드 안에서 나는 자주 이게 진짜 내 취향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이건 내가 직접 고른 결과일까 아니면 반복된 노출이 익숙함을 만들고 익숙함이 곧 호감으로 착각되게 한 걸까.
알고리즘은 확실히 나를 반영하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록된 나에 가깝다.
결국 중요한 건 그 거울을 통해 내가 나를 다시 바라볼 수 있느냐는 점이다.
비춰진 모습에만 머무를지 아니면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취향을 탐색해볼지 선택은 여전히 나에게 달려 있다.
2. 익숙함에서 호감으로 또 호감에서 취향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는다는 건 단번에 되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늘 처음에는 별로였지만 자꾸 보니 좋아졌다는 말을 한다.
그건 꼭 사람 관계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콘텐츠도 물건도 음식도 마찬가지다.
처음 보는 장르의 드라마 전혀 입지 않았던 스타일의 옷, 몰랐던 뮤지션의 곡을 몇 번 듣다 보면 점점 더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경우가 많다.
그 반복의 끝에 자리 잡는 감정이 바로 호감이고 그 호감이 쌓여서 형성된 것이 결국 취향이 된다.
추천은 익숙함을 제공하고 익숙함은 선택의 폭을 넓힌다.
이걸 수동적인 반응이라고 보기보다는 스스로도 몰랐던 가능성을 발견하는 방식이라고 보는 게 더 맞다.
그렇게 만들어진 취향은 결코 가짜가 아니다. 그건 내가 직접 경험을 통해 축적한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3. 나를 확장하는 도구로서의 추천 시스템
알고리즘은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한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만들고 세상을 좁게 만들기도 한다.
다양성을 제한한다는 말 물론 그런 측면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 알고리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용하는지는 전적으로 사용자에게 달려 있다.
추천은 나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더 넓히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내가 클릭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세계 내가 지나쳤다면 도달하지 못했을 감각들을 추천 시스템은 우연인 듯 의도된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선택의 연속 안에서 우리는 단순히 선택하는 소비자가 아니라 스스로의 취향을 탐색하고 실험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즉 추천은 내가 나를 더 잘 이해하게 해주는 하나의 장치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추천 시스템은 단순히 맞춤형 콘텐츠를 보여주는 기술 그 이상이다.
그건 나의 이전 선택들을 반영해서 다음 가능성을 제시하고 또 그 제안 속에서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통해 다시 나를 이해해간다.
처음엔 낯설었던 콘텐츠가 어느 순간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로 전환되는 그 과정 그건 결국 내 안의 확장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확장은 콘텐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내가 어떤 감정에 끌리는지, 어떤 분위기에 머무는지, 내가 어떤 언어에 반응하는지 같은 미묘한 감각까지 포착되기 시작한다.
물론 완벽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시도 속에서 우리는 나에 대해 조금 더 다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추천은 나를 통제하려는 기술이라기보다는 내가 스스로 탐색하고 구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도에 가깝다.
어디로 갈지는 내가 결정하되 그 여정이 조금 더 흥미롭고 풍성해질 수 있도록 길을 비춰주는 도구 말이다.
결국 내가 만든 취향 그 안에서 나도 새로워지다
이렇게 조금씩 따라가며 고른 콘텐츠들 그 조각들이 쌓여 만들어진 게 지금의 내 취향이다.
중요한 건 그것이 외부로부터 주어진 게 아니라 내 선택으로 축적됐다는 점이다.
알고리즘이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결국 클릭하고 머물고 빠져드는 순간은 온전히 내 몫이다.
그래서 한참 뒤에 돌아보면 언제부터 내가 이런 걸 좋아했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변화는 느리게 다가오지만 분명히 내 안에 스며들어 있다. 처음엔 타인의 기호 같았던 것이 어느 순간 내 취향이 되어 있고 그 안에는 내가 몰랐던 나의 취향이 담겨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고정된 자아가 아니라 변화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그 변화의 기록이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남는 게 아닐까.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선택을 기술에 맡기고 있다. 피로한 일상 속에서 추천은 분명 효율적인 도구고 실제로 삶의 질을 높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편리함이 익숙함으로 굳어질 때 우리는 점점 덜 탐색하고 덜 질문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익숙함은 내가 원래부터 좋아했던 것처럼 기억 속에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여전히 선택의 주체라는 점이다. 추천은 길을 제시할 수 있지만 그 길을 걷는 사람은 나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지 또 언제는 그 길에서 벗어날지 결정하는 것 역시 나의 몫이다.
그래서 질문이 남는다.
편리한 기술이 만든 세상에서 나는 여전히 나다운 선택을 하고 있는 걸까
그 선택이 쌓여 만들어질 내일의 나는 지금의 나와 얼마나 닮아 있을까
우리가 만든 취향 속에서 우리는 더 자유로워지고 있는 걸까 아니면 더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