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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다른데 왜 비슷해져 갈까

by 잇슈17 2025. 6. 18.

다른데 이상하게 닮았다.

길을 걷다가 문득 마주친 사람의 옷차림이 내 옷장 속 무언가와 겹칠 때가 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한 영상을 친구도 같은 날 봤다는 얘기를 듣는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 내가 골라 본 콘텐츠 내가 쓰는 말버릇까지도 이상할 만큼 누군가와 닮아 있다.
우리는 분명히 다르고 그렇게 태어나 살아왔는데 왜 점점 더 비슷해지는 걸까.

이 질문은 단순한 관찰을 넘어 현대 사회에서 개성과 표준화가 충돌하는 지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알고리즘 반복 그리고 선택이라는 키워드가 있다.

모두가 다른데 왜 비슷해져 갈까
모두가 다른데 왜 비슷해져 갈까

1. 반복되는 추천이 만든 안정감

알고리즘은 사용자에게 익숙한 것을 보여준다.
내가 이전에 관심을 가졌던 콘텐츠 내가 멈춰 본 영상 내가 좋아요를 누른 상품들.

이러한 데이터들은 나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목적에서 수집된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점점 더 내가 좋아할 것 같은 것들만 보게 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내가 좋아할 것 같은 것이 반복되다 보면 실제로 내가 좋아했던 것과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그 익숙함은 안도감을 준다.
이건 나한테 잘 맞아 이건 내 스타일이야. 라는 착각 속에서 추천된 것들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이 패턴은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와 비슷한 패턴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시스템 안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위치에서 시작했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익숙해져 간다.
이 익숙함은 점점 더 강력해진다. 새로운 것을 탐색하려는 시도는 줄어들고, 이미 알고 있는 것 안에서만 순환하게 된다. 새로운 콘텐츠를 시도하려다가도 재미없으면 어쩌지? 시간 낭비일지도 몰라 하는 생각에 결국 알고 있는 쪽을 선택한다. 이러한 선택은 반복될수록 더 많은 데이터를 쌓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더 정교한 추천이 이뤄진다.

그렇게 알고리즘은 나를 점점 더 고정된 형태로 만들고 그 안에서 나는 안도감을 느낀다. 마치 이게 나야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실은 그 형태는 과거의 선택과 시스템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일 뿐이다. 선택의 자유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실제로 그 자유를 사용하는 일은 점점 더 줄어든다.

그래서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지금 이 안정감 정말 내가 원해서 얻은 걸까?
아니면 시스템이 설계한 길 위에서 그저 편안함을 소비하고 있는 걸까?

2. 취향이 아니라 패턴이 남는다

취향은 원래 선택의 흔적이었다.
수많은 가능성 중 어떤 것을 고를지 그리고 왜 그렇게 선택했는지를 통해 나만의 스타일이 생겼다.
하지만 지금은 그 선택의 폭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자주 노출된 것 상단에 배치된 것 추천된 것들이 더 자주 클릭되고 더 자주 소비된다.
취향이란 이름으로 남는 건 사실 접근 가능한 정보의 흔적일 뿐이다.

패턴은 기계가 가장 잘 인식할 수 있는 인간의 움직임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패턴을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플랫폼이 제공하는 나만을 위한 콘텐츠는 사실 수많은 비슷한 나들을 위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는 서로 다른 줄 알았지만 같은 흐름 속에서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듣고 같은 것을 사고 있다.

비슷한 맥락의 콘텐츠 안에서 계속 순환하며 새로운 선택의 여지는 점점 줄어든다.
취향은 점점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보여지는 것이 되어간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익숙함을 편안함이라 착각하며 스스로의 취향을 오해하게 된다.

3. 다름은 노력이 필요하다

다르게 보이고 싶다고 해서 당장 다를 수는 없다.
지금은 오히려 다름이 더 큰 에너지를 요구한다.
자동 재생을 끄고 검색창에 직접 단어를 입력하고 익숙하지 않은 브랜드를 시도하는 일은 작지만 낯선 수고다.

이건 단순히 개성의 문제를 넘어서 정보 소비의 다양성을 위한 적극적인 행동이다.
우리는 원래 다르게 생겼고 다르게 자랐고 다르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 다름이 유지되려면 같은 방식으로 정렬되는 세상의 흐름에 작은 저항을 해야 한다.

다양성은 결국 선택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선택은 반드시 조금은 불편해야 한다.

불편함을 감수한다는 건 단순히 새로운 걸 시도하는 차원이 아니다. 그건 내가 정말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를 되묻는 과정이기도 하다. 익숙한 것을 피하고 낯선 콘텐츠를 클릭해보는 것 친구들과 다른 옷을 입는 것 대세와 어긋난 선택을 하는 건 때로 어색하고 부담스럽다. 하지만 그 작은 어긋남 속에서 우리는 내 취향의 원형을 다시 발견할 수 있다.

다르게 보이는 건 이제 의식적인 행동이 되었다. 플랫폼과 시스템은 우리의 행동을 더 빨리 더 똑똑하게 예측하려 하고 우리는 그 예측을 벗어나는 순간에만 진짜 개성을 경험한다.

결국 다름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지켜내는 것이다. 알고리즘이 내 선택을 대신하려고 할 때 한 걸음 멀어져서 내 안의 기준을 다시 세워보는 일. 그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작은 저항일지도 모른다.

정말 다른 나로 살고 있는 걸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다.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지고 다른 공간에서 자라나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렇게 쌓인 시간들은 우리를 고유하게 만들었고 그 고유함이 곧 ‘나’라는 존재의 증거였다.

하지만 요즘 그 다름은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
나만의 선택이라 믿었던 것들이 알고 보면 수많은 사람들과 겹치고

내 취향이라 여겼던 것들이 알고 보면 추천 알고리즘이 조심스럽게 안내한 길이었음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묘한 의심과 마주하게 된다.

나는 정말 나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알고리즘은 분명 편리하다. 무수한 선택지 속에서 나를 덜 피곤하게 만들어주고 굳이 고르지 않아도 될 것들을 대신 걸러준다.
하지만 그 편안함 속에서 우리는 점점 익숙한 것에 길들여지고 낯선 것을 기피하게 되며 결국 내가 선택한 것 같은 삶을 살게 된다.

그래서 가끔은 멈춰서 물어봐야 한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콘텐츠,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한 이 제품, 내가 자주 쓰는 이 말투조차 정말 스스로 선택한 것일까
아니면 반복된 익숙함과 추천의 조합 속에서 가장 쉽게 다가온 선택을 그냥 받아들인 걸까

다름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비슷해지려는 환경 안에서는 점점 노력해야만 유지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우리는 본래 서로 달랐고 앞으로도 달라질 수 있는 존재다.
그 가능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익숙함을 한 번쯤 의심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비슷해지지 않기 위해 오늘은 한 번쯤 새로운 창을 열어보면 어떨까.
검색창에 늘 쓰던 단어 대신 전혀 다른 키워드를 쳐 보거나 추천 리스트가 아닌 내가 스스로 골라 낸 리스트를 따라가 보거나
조금 낯설고 어색한 걸 일부러 선택해 보는 것이다.

익숙함을 잠시 거부해 보는 것이 어쩌면 그게 진짜 나를 다시 만나는 아주 사소하지만 중요한 시작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