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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좋아하는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

by 잇슈17 2025. 6. 13.

나를 좋아하는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나를 좋아하는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

1.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선택한 취향들

좋아하는 게 많다고 해서 다 같은 무게를 가지진 않는다. 어떤 건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것이고 어떤 건 최근에서야 흥미를 느끼게 된 것들이다. 취향이란 결국 쌓인 경험과 환경 그리고 당시의 감정이 얽힌 결과물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조용한 공간을 좋아했다. 북적이는 장소보다는 사람 없는 공원, 카페에서도 구석자리를 선호했다. 그게 그냥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이런 내 취향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순간이 있었다.

친구들이랑 여행을 가서 숙소를 고를 때였다. 대부분이 야경이 보이는 곳이나 시끌벅적한 거리를 선호했는데 나는 반사적으로 “창문 열면 숲 냄새 나는 데가 좋겠다”라고 했다. 그때 친구가 농담처럼 말했다.
“너는 참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

맞다. 나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근데 그건 단순히 외향 내향의 구분이 아니라 내가 어떤 상황에서 마음이 편해지는지를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선택해온 결과다.

비슷한 일이 또 있다.
다른 사람들에겐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인디 음악을 나는 종종 플레이리스트 맨 위에 올려두곤 한다. 처음엔 우연히 들은 한 곡에서 시작됐다. 자극적인 리듬이나 훅 없이 그냥 기타 한 대와 목소리만 담긴 조용한 곡이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걸 계기로 비슷한 스타일의 음악을 찾아 듣게 되었고 이제는 하루를 시작할 때 꼭 그런 음악으로 모닝 루틴을 만든다.

이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대부분 무의식의 반복에서 나온다. 처음엔 우연이었지만 자주 경험하고 좋았던 기억이 쌓이면서 결국 취향이 된다. 그리고 그 취향은 어느 순간 내 정체성 일부가 되어 있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는 건 단순히 재밌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이 편안하거나 안정감을 느끼게 해준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그걸 계속 선택하고 반복하면서 나는 나를 만들어간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란 단순한 리스트가 아니다. 그건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경험을 해왔는지 보여주는 지도 같은 것이다.

 

2. 나를 좋아하는 것들, 알고리즘과 반영된 이미지

요즘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묻기 전에 세상이 나에게 먼저 대답해준다.
넷플릭스는 내가 볼 만한 콘텐츠를 추천하고 유튜브는 다음 영상까지 줄줄이 이어준다. 인스타그램 피드에는 내가 관심 가질 만한 이미지와 릴스가 끊임없이 나온다.

이쯤 되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건 진짜 내가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좋아할 거라고 시스템이 생각한 걸까?’

실제로 내가 평소보다 특정 콘텐츠를 조금 오래 봤다는 이유로 비슷한 것들이 계속 추천될 때가 있다. 처음엔 신기하고 편리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내 취향이 아니라 내 행동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에 내가 갇히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한때 관심을 가졌던 키워드, 좋아요를 눌렀던 게시물, 클릭했던 영상… 그 기록들은 알고리즘에 의해 하나의 ‘프로필’로 정리된다. 그리고 그 프로필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대답이 된다.

문제는 그게 언제나 정확한 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기분, 상황, 감정에 따라 좋아하는 게 달라지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한 행동이 꼭 취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알고리즘은 맥락을 알지 못한 채 내가 좋아할 것 같은 것을 계속 보여준다.

내가 왜 그 영상을 끝까지 봤는지, 그날 어떤 기분이었는지, 혹은 단순히 실수로 눌렀던 것인지까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알고리즘에게 중요한 건 무엇을 했는가이지, 왜 했는가는 아니다.

결국 알고리즘은 내가 만든 행동의 잔상으로 나를 규정한다.
그리고 그 이미지에 기반해서 나를 끊임없이 강화된 하나의 패턴 속에 가둔다.
마치 거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굴절된 렌즈에 가까운 그것이 점점 더 나를 닮아가고 끝내는 내가 그 이미지를 스스로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도 온다.

그러다 보면 진짜 나는 점점 흐릿해진다.
나도 모르게 이게 내 취향인가 보다라고 수긍하게 되는 지점, 알고리즘이 추천한 것이 반복적으로 내 앞에 등장하면서 마치 원래부터 내가 좋아했던 것처럼 느껴지는 감각.
하지만 그건 선택이 아니라 적응이다.
선호가 아니라 익숙함이고 취향이라기보다는 노출에 따른 반응일지도 모른다.

이런 시대에 '내가 뭘 좋아하는가'를 안다는 건 이제 단순히 목록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기억을 복원하고 의미를 되짚는 일이다.
무엇이 나를 설명하고 무엇이 나를 왜곡하는지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나를 진짜 나로 되돌려 놓는 작업.
그건 무심코 흘러가는 피드 속에서 방향을 틀고 일부러 낯선 선택을 하는 작고 의도적인 반항일지도 모른다.

 

3. 나와 나를 좋아하는 것들 사이의 간극

‘좋아하는 것’과 ‘좋아할 것 같은 것’은 분명 다르다.

나는 가끔 무의식적으로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영상이나 콘텐츠를 계속 소비하다가, 문득 정신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이걸 정말 좋아하나? 그냥 계속 보여줘서 본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면 약간 허탈해지기도 한다. 마치 내 선택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조종한 것 같은 기분. 사실 누가 조종한 건 아니지만 나조차도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알지 못하는 사이 데이터가 나보다 먼저 결정을 내려버린다.

그렇게 보면, 요즘 세상은 너무 많은 좋아할 만한 것들로 넘쳐난다.
광고도 내 성향에 맞춰 타겟팅되고 추천 시스템은 끊임없이 내 취향을 맞춘다.
그런데 그게 진짜 나를 위한 걸까 아니면 나를 소비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일 뿐일까?

때로는 그 간극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내가 좋아하는 게 맞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진짜 내가 원했던 감정을 덮어버리는 일.
그래서 나는 점점 더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를 자주 물어보게 된다.

좋아한다는 건, 결국 나를 알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좋아하는 건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무엇을 좋아하고 왜 좋아하는지를 알아간다는 건 결국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해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일부러 추천을 끄고 새로운 것을 찾아보기도 한다. 의도적으로 생소한 장르의 음악을 듣거나, 평소엔 안 읽던 분야의 책을 읽어본다.
그 과정에서 내 반응을 살핀다. “이건 왜 끌리지?”, “이건 왜 불편하지?” 이런 질문이 계속된다.

그러면서 조금씩 깨닫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늘 변하고 또 다시 만들어지는 중이라는 것을.
어제 좋아했던 걸 오늘은 싫어할 수도 있고 오늘 처음 알게 된 걸 내일은 가장 좋아하게 될 수도 있다.

알고리즘은 변하지 않지만 사람은 변한다.
나를 좋아하는 것들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 사이의 차이를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더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여유야말로 지금 같은 시대에 꼭 필요한 감각 아닐까?

그 여유는 꼭 거창한 게 아니어도 된다.
잠깐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내가 뭘 좋아했는지를 천천히 떠올려보는 시간, 추천 대신 스스로 검색해서 고른 한 편의 영화, 기계가 아닌 내 기분이 선택하게 만든 플레이리스트 한 곡.

이런 순간들이 모여서 결국 나라는 사람을 더 잘 이해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말한다.
요즘은 좋아하는 걸 찾는 게 아니라 보여지는 걸 소비할 뿐이라고.
하지만 나는 믿고 싶다.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아직도 내가 선택할 수 있다고.
그걸 천천히 찾아가는 것, 그게 어쩌면 ‘나답게 사는 법’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