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루를 돌아보면, 놀랍도록 많은 것들이 알아서 진행된다.
다음 영상이 자동으로 재생되고 캘린더는 미리 알람을 울리고 심지어 점심 메뉴조차 배달 앱이 추천해준다. 생각보다 더 많은 선택이 이미 시스템에 의해 예측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점점 예측 가능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이렇게 모든 게 계획되고 예상 가능한 세상에서 우리는 정말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유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일까, 아니면 선택할 수 있는 상태 그 자체일까?
예측되는 삶과 자유로운 삶은 정말 공존할 수 있을까?
이번 글에서는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예측 가능한 일상 속에서 자유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함께 들여다보려 한다.
1. 예측 가능성이 주는 안정감과 불편함
우리는 예측 가능한 삶을 원한다.
내일 무엇을 할지 알고 있고, 한 달 뒤의 일정이 이미 달력에 적혀 있으며, 몇 년 뒤의 목표도 정리돼 있다면 마음이 놓인다. 미래가 어느 정도 그려진다는 건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감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커리큘럼이 정해져 있고, 회사에서는 연간 계획이 있다.
이런 구조는 우리를 괴롭히는 대신 ‘길을 알려주는 지도’ 같은 역할을 한다. 예측 가능성은 통제력을 부여하고 사회적 안전망 속에서 우리가 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안에서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너무 계획된 인생, 정해진 수순, 루틴화된 하루 속에서 내가 정말 선택한 게 뭐였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정말 이 길이 내가 원하는 길일까, 아니면 그냥 정해진 길이었을 뿐일까?
예측 가능한 삶은 분명 안심되지만, 과연 그 안에 진짜 자유가 존재할까? 아니면, 예측 가능한 삶이라는 이름의 정교한 틀 안에 내가 스스로 갇히고 있는 건 아닐까?
2. 알고리즘이 짜놓은 일상 속에서
요즘 우리의 삶은 예측 가능성을 넘어 자동화된 반복 속에 들어와 있다.
넷플릭스가 다음 영화를 추천해주고 유튜브는 내 취향을 기억한다. 내일 아침에 들을 노래까지도 알고 있는 스포티파이, 한 달 후 내가 살 것 같은 제품을 미리 광고해주는 쇼핑 앱까지 보면 충분하다. 처음엔 편리하다.
“이걸 어떻게 알았지?” 싶을 정도로 내 기호를 잘 파악해주는 시스템은 마치 내가 무엇을 원할지 미리 아는 것 같다. 일상의 선택지가 줄어들고 고민이 덜어진다. 하지만 그게 반복되면 묘한 감각이 따라온다.
선택하지 않아도 결정되는 것들과 내가 생각하기 전에 추천되는 것들.
이건 내가 스스로 고른 삶이 맞는가? 아니면 누군가 미리 짜놓은 경로 위에서 나는 그냥 클릭만 하고 있는 걸까?
자유롭게 보이지만 사실은 더 치밀하게 관리되고 있는 삶.
알고리즘은 우리에게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준비했어”라고 말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그 말에 너무 쉽게 길들여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측 가능한 일상은 평온할 수 있지만 그 평온은 자주 반복된 자극에 익숙해진 상태일 뿐이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삶은 편할지 몰라도 그 편안함은 곧 주체성을 위협하는 기제가 될 수 있다.
자유란 무엇일까? 선택과 예측 사이의 균형
그렇다면 자유란 무엇일까?
누군가는 완전한 계획 없음이 자유라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스스로 정한 루틴을 지키는 것이 자유라고 말한다.
자유는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자 그 선택을 책임질 수 있는 의지다.
하지만 요즘 시대의 문제는 우리가 선택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구조에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 하는 선택 중에 정말 내가 스스로 한 것은 얼마나 될까?
아침에 켠 유튜브, 출근길에 들은 팟캐스트, 점심 메뉴, 심지어 오늘 내가 입은 옷까지도 어제의 기록과 오늘의 피드가 만들어준 흐름 속에서 자동으로 흘러들어온 것일 수 있다. 자유는 내가 하는 선택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은 점점 자유로 보이는 틀 속에서 인간을 움직인다.
편안함과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선택지를 줄이고, 생각을 덜어내며, 자동화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진짜 자유는 그런 예측 가능성 속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보려는 시도, 즉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에게 익숙한 것에 불과한지 묻는 태도이다.
우리는 그렇게 나만의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
미래는 원래 예측되지 않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예측하려 한다. 왜냐하면 불확실성은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예측된 삶은 또 다른 위험을 내포한다.
모든 일정이 계획되고 모든 행동이 추적 가능하며 모든 취향이 분석되어버리는 삶.
그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스스로 살아가고 있는가?
자유로운 삶이란 계획이 없는 삶이 아니라 계획을 내 손으로 세우는 삶이다.
남이 짜놓은 일정이 아닌 내가 의미 있다고 느끼는 방향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것 말이다.
무작정 예측을 거부하자는 게 아니다.
예측 가능한 틀을 때로는 이용하고 때로는 깨뜨리며 내 선택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작게는 내일의 점심 메뉴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부터 크게는 내 커리어의 방향을 스스로 묻고 설정해보는 것까지 시작해 보는 것이다.
우리가 다시 삶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순간 그 안에 자유는 살아 숨 쉰다.
예측되는 삶에도 자유는 존재할 수 있다.
단, 그 삶의 설계자가 ‘나’일 때에 한해서 말이다.
우리는 점점 더 정교하게 예측된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일상이 효율적으로 설계되고 대부분의 결정이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미리 정해진다.
그 안에서 우리가 느끼는 자유는 과연 진짜일까 아니면 그냥 착각일까?
자유란 결국 선택할 수 있는 상태이자 선택하겠다는 의지다.
예측된 흐름에서 잠깐 벗어나 낯선 선택을 시도해보는 것과 누군가 대신 짜준 경로가 아닌 내가 의미 있다고 믿는 방향으로 걸어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씩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모른다.
예측 가능한 삶 속에서도 자유는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자유는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 늘 스스로에게 묻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 아닐까?
“지금 나는, 진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