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런 사람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진다.
설명하려고 하면 할수록 왠지 진짜 나는 빠져나가 버리는 느낌.
그러다 보니 요즘은 말로 설명하는 대신 그냥 나를 보여주는 쪽이 훨씬 더 정확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로 다 전달할 순 없지만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면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것들이 있다.
오히려 그게 말보다 더 나를 잘 설명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번 글에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1. 말보다 먼저 전해지는 것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종종 자기소개를 한다.
"어디서 일하고,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아무리 길게 말해도 정작 상대는 나를 그렇게 기억하지 않을 때가 많다.
대부분은 말보다 내가 어떤 분위기였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혹은 그 순간 어떤 태도로 임했는지를 더 강하게 받아들인다.
나라는 사람은 결국 말이 아니라 행동, 표정, 기류 같은 비언어적 신호로 더 잘 전해진다.
말은 자주 과장되고 가끔은 어긋난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행동은 오히려 설명보다 더 정직하다.
그 사람이 어떤 순간에 웃는지 어떤 상황에 불편해하는지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보면 길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정보들이 많다.
그래서일까.
나 자신을 정확히 드러내고 싶을수록 말은 줄이고 행동을 남겨야 하는 건 아닐까?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을 때였다.
프로젝트 킥오프 미팅에서 나는 특별히 나서지도 않았고 무언가 인상적인 발표를 한 것도 없었다.
그냥 조용히 메모를 하고 중간중간 다른 팀원이 말할 때 고개를 끄덕이거나 반응을 주는 정도였다.
그런데 회의가 끝난 뒤 한 팀원이 슬쩍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같이 일해보면 차분하고 신뢰감 있을 것 같아요.”
나는 그 말이 조금 의외였다.
내가 그런 인상을 주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사실 그날 컨디션도 별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아마 말보다 내가 보였던 태도가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질문을 던질 때 상대의 말을 끝까지 기다렸고 이견이 나왔을 때 표정 하나로 동의를 표시했다.
크게 설명하지 않아도 나라는 사람의 일하는 방식이나 리듬이 어느 정도는 전해졌던 것 같다.
이 경험 이후로 나는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말을 하는 방식이 그리고 그보다 더 먼저는
말을 하지 않아도 풍기는 분위기와 태도가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우리가 무언가를 말로 설명하기도 전에 이미 많은 것들이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
그건 결국 나를 말하지 않고도 보여주는 방법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 나는 어떤 순간에 드러나는가
나를 보여준다는 건 거창한 발표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아주 일상적인 순간에서 무심코 드러나는 나의 방식이 진짜 나를 말해준다.
누군가가 실수했을 때 나는 어떤 말을 건네는지 모르는 주제가 나왔을 때 침묵하는지 질문을 던지는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차분한지 불편함을 드러내는지 이런 것들이 결국 ‘나’라는 사람을 만든다.
설명은 일방적이지만 행동은 맥락 속에서 이해된다.
그리고 맥락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태도는 더 깊은 신뢰를 만든다.
예를 들어, “저는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남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약속을 지키고 뒤에서 비난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게 훨씬 더 강력한 방식이다.
사람은 말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을 보여주고 싶다면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를 꾸준히 돌아봐야 한다.
점심시간에 누군가의 말에 맞장구를 쳤는지 회의 중에 불편한 이야기를 꺼낼지 말지 고민했던 그 찰나의 순간들.
그 안에 이미 나라는 사람의 성향과 가치관이 들어 있다.
어떤 날은 무심코 넘겼던 내 반응이 누군가에게는 강한 인상으로 남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가끔 하루를 돌아보며 생각한다.
“오늘 나는 어떤 장면에서 드러났을까?”
“그 장면의 나는 내가 되고 싶은 나였을까?”
이런 질문들이 쌓이면 나는 조금 더 나를 의식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의식적으로 살아내는 날들이 늘어날수록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보여지는 나는 점점 더 단단해지는 것 같다.
3. 보여주는 태도는 일관성에서 나온다
설명은 오늘의 언어이고 보여줌은 어제의 누적이다.
한 번 멋지게 말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매일을 비슷한 자세로 살아내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바로 그 일관성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설명 없는 증명이 된다.
SNS나 면접처럼 짧고 인위적인 장면에서는 우리는 쉽게 나를 포장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쌓이면 결국 진짜가 드러난다.
누구와 함께 있을 때 내가 더 편안한지 어떤 일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어떤 말은 절대 하지 않는지 말이다.
이런 무수한 반복과 행동이 결국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나를 알게 하는 방식이 된다.
결국 나를 보여주는 데 가장 필요한 건 말재주도 연출도 멋진 말도 아니다.
그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진짜로 살아내는 것.
그게 반복되고 쌓일 때 설명 없이도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게 된다. 어쩌면 오해조차도 줄어들게 된다.
보여주는 나는 즉흥이 아니라 누적의 결과다.
나아가서, 왜 설명하지 않는 내가 더 진실할까?
우리는 종종 나를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더 많이 설명하려 하고 더 구체적으로 말하려고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설명이 많아질수록 오해도 따라온다.
왜냐하면 듣는 사람은 내 말이 아니라 나의 태도를 본다.
말은 그 순간만으로 존재하지만 행동은 그 사람의 성향과 가치관 우선순위를 오롯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설명은 내 입장에서 나를 말하는 것이지만 보여주는 건 상대의 눈으로 나를 볼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상대가 경험한 내가 같아질 때 우리는 비로소 연결된다.
그래서 중요한 건 어떻게 말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이다.
잘 보여지는 것보다 잘 살아내는 것.
그게 결국 나를 가장 정확하게 전하는 방식이 된다.
나를 보여주는 것은 설명보다 훨씬 어렵지만 훨씬 진실하다.
그 진실함이 누군가에게 신뢰가 되고 기억이 되고 나라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가 된다.
그리고 그건 어떤 말보다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