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순간이 있다.
그냥 지나가는 생각이었고 말로 꺼낸 적도 없는데…
잠시 후 휴대폰 속 화면에 마치 누군가 엿들은 것처럼 딱 맞는 광고가 떠오른다.
마음속 깊은 어딘가에만 있던 욕구가 조용히 호출된 느낌.
그게 꼭 누군가 내 안을 들여다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건… 너무 우연한 거 아니야?’
한두 번이면 웃고 넘기겠지만 비슷한 경험이 반복되면 문득 생각이 든다.
내가 무엇을 보고 듣고 좋아하는지 어쩌면 나보다 더 잘 아는 시스템이 존재하는 건 아닐까?
우리가 스치듯 지나가는 콘텐츠 뒤에는 수많은 데이터와 예측, 그리고 시나리오가 숨어 있다.
그리고 그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준비된 장면일지도 모른다.
1. 내가 방금 생각한 건데? 라는 이상한 경험
어느 날 친구에게 여행 얘기를 꺼냈다. 제주도 얘기를 했고 그 자리에서 폰을 꺼내 뭔가 검색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몇 시간 후, SNS 피드에 제주도 숙소 광고가 떴다. 기시감이 들었다.
"이거 들었나?"
설마 설마 하면서도, 이런 순간은 한 번 이상 다들 겪어봤을 것이다.
실제로 마이크가 우리의 대화를 듣는다는 루머는 계속 돌았고 기업들은 이를 부정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그 광고가 왜 나왔느냐보다,
"그 광고가 왜 나에게 딱 맞아 떨어졌는가"다.
우리는 종종 그 순간을 우연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알고리즘과 데이터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수많은 흔적들로부터 놀랍도록 정교한 맥락을 잡아낸다.
그 우연은 사실 예측된 패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패턴은 당신이 평소에 인식하지 못했던 행동과 관심, 반복적인 습관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신이 자주 머무는 시간대의 앱 사용 패턴, 최근 검색한 키워드의 조합, 좋아요를 누른 콘텐츠의 유형 말이다.
그 모든 조각들이 쌓여 하나의 데이터적 인물상, 다시 말해 예측 가능한 당신이 만들어진다.
광고주는 그 예측 가능한 당신을 기반으로 어떤 메시지를 언제 던져야 반응할지 계산한다.
심지어 직접적인 클릭을 유도하지 않더라도 그 장면을 한 번 스쳐 지나가게 만드는 것 자체가 목표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뇌는 이미 본 것을 익숙하다고 느끼고 익숙한 것을 신뢰하게 되어 있으니까.
즉, 광고는 우리 뇌의 무의식적인 반응까지 계산에 넣는다는 얘기다.
그러니 그 이상한 우연의 순간 “이걸 어떻게 알았지?” 싶은 그 기시감은 단순한 기계적 우연이 아니다.
그건 어쩌면 수많은 작은 나들의 흔적이 합쳐져 만들어낸 미래의 예측 장면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장면 안에서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보이고 있는지를 자주 잊곤 한다.
이제는 거꾸로 묻고 싶다.
나는 지금 어떤 예측 가능한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2. 알고리즘은 당신의 모든 흔적을 저장하고 분석한다
우리는 매일 무수한 흔적을 남긴다.
검색어, 클릭 시간, 머문 시간, 위치 정보, 좋아요, 심지어 스크롤 속도까지 말이다.
이 정보들은 개별적으로 보면 하찮을 수 있지만 그것들이 쌓이면 꽤 정확한 나를 그려낸다.
예를 들어, 퇴근 시간 이후에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쇼핑몰에서 장바구니에만 넣고 구매하지 않는 시간대,
피로감이 높은 날에 자주 듣는 음악의 분위기 등은 내가 직접 말하지 않아도 내 상태를 드러낸다.
광고주는 이 데이터를 활용해 내가 언제 어떤 감정일 때 구매 전환이 잘 되는지를 파악한다.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이건 그냥 스쳐 지나가는 광고야"라고 생각한 그 장면 뒤에는 정교하게 설계된 타이밍과 예측 모델이 작동하고 있다.
3. 알고리즘은 내 생각보다 나를 더 잘 안다
우리가 진짜 '우연'이라고 느끼는 건 나도 몰랐던 욕구나 관심사를 광고가 먼저 제안했을 때다.
예를 들어, 요즘 일이 버겁다고 느끼던 차에 번아웃 극복 클래스 광고가 뜨거나
누군가에게 말도 꺼내지 않았던 고민과 관련된 제품이 추천될 때 이다.
이럴 때면 "어떻게 알았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정확하게 찔렸다는 기분이 든다.
그건 알고리즘이 내 내면을 읽어서가 아니라 내가 이미 충분히 많은 데이터로 나를 노출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아주 일상적으로 나에 대한 정보를 계속 외부에 흘리고 있다.
그리고 알고리즘은 그런 나의 경향성을 기억하고 반복해서 나를 재현해낸다.
그래서 나는 매번 비슷한 광고를, 비슷한 뉴스 피드를, 비슷한 상품을 접하게 된다.
선택했다고 믿지만 사실 선택당한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이걸 좋아해서 고른 걸까? 아니면 추천되었기에 좋아하게 된 걸까?
이는 단순히 취향의 문제만은 아니다.
소비, 사고방식, 감정, 행동마저도 반복되는 입력 속에서 길들여지고 있는 건 아닐까?
광고는 더 이상 보라고 던지는 것이 아니라
네가 보고 싶어 할 타이밍에, 원하는 방식으로 다가오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때로는 클릭하고, 저장하고, 구매하고.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의지로 한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알고리즘에 의해 유도된 반응이었는지는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자각이 바로 디지털 시대의 자율성을 회복하는 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당신이 본 그 광고는 우연이 아니었다.
당신이 그걸 보게 될 것이라는 예측 위에서 기획된 결과였다.
그리고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자신을 그 예측 시스템 안에 내어주고 있다.
질문은 이거다. 그 안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콘텐츠는 정말 내가 보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보고 싶어 하게끔 설계된 걸까?
우리는 선택했다고 믿지만 어쩌면 아주 정교하게 연출된 메뉴판 위에서 고르고 있는 건 아닐까.
무한한 자유를 제공하는 듯 보이는 디지털 세계에서
우리는 점점 더 내가 그럴 것이라고 예측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시스템이 모두 나쁜 건 아니다.
추천 알고리즘은 분명 우리를 편리하게 만들었고, 때로는 무심코 지나쳤을 영감을 다시 데려와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을까?
내가 좋아해서 고른 것과 고르게 유도된 것의 경계는 어디쯤에 있을까?
이제는 그저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보고 듣는 것들에 대해 한 번쯤 의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알고리즘이 짜놓은 질서 안에서 나만의 우연을 찾기 위해서라도.
당신이 본 그 광고는 우연이 아니었다.
그리고 어쩌면 당신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