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언제 떠오를까?
책상 앞에서 깊게 고민할 때보다는 샤워를 하거나 길을 걷거나 멍하니 있을 때 떠오른 경험이 많을 거다.
뭔가 열심히 하지 않아도 좋은 생각이 나는 그 순간들은 단순한 우연일까?
사실 인간의 뇌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때 특정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라는 이름의 이 시스템은 창의성, 자기반성, 상상력과 깊게 관련된 영역이다.
이 글에서는 왜 멍 때리는 시간이 창의성을 자극하는지 그리고 그 시간이 우리 사고에 어떤 여백을 만들어주는지 천천히 살펴보려고 한다.
1. 바쁨의 시대 멈춤이 허용되지 않는 일상
요즘 우리는 바쁘다는 말에 익숙해져 있다.
할 일은 끝없이 쌓여 있고 시간을 비워두면 괜히 불안하다.
일정이 없으면 무능한 사람처럼 느껴지고 잠깐의 여유도 왠지 낭비처럼 느껴진다.
그 결과, 우리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연결되고 확인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말 창의적인 순간은 이렇듯 꽉 찬 일정 속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다고 해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건 아니지 않는가
오히려 샤워를 하거나 산책 중이거나 침대에 누워 멍하니 있을 때,
전혀 집중하지 않고 있는 순간에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오르곤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의 뇌는 멈춰 있을 때 비로소 연결되지 않던 것들을 연결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멈춤이라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멈추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멈춰 있는 나 자신을 불안해하고 의미 없는 시간이라고 느끼며 조급해한다.
하지만 이 조용한 순간이야말로 창의적인 사고가 준비되는 시점이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화면에서 눈을 떼고 잠깐이라도 아무 목적 없이 머무는 연습이 필요한 이유다.
무의식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을 때 그동안 쌓여 있던 정보와 감정 아이디어가 느슨하게 엮이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연결을 만들어낸다.
창의성은 언제나 일상적 멈춤에서 시작된다.
그걸 허용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저 정보만 축적하는 기계가 될 뿐이다.
2.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멍 때릴 때 작동하는 뇌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단순한 휴식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는 뇌가 그 시간에 실제로 굉장히 많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경과학자들은 우리가 명확한 목표 없이 멍하니 있을 때 뇌의 특정 네트워크가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걸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라고 부른다.
이 네트워크는 우리가 외부 자극에 집중하지 않을 때 즉 내면으로 향할 수 있는 틈이 생길 때 작동한다.
예를 들면 공상하거나 과거를 회상하거나 미래를 상상하거나 혹은 나에 대해 생각할 때 활성화된다.
창의성, 자기성찰, 감정의 통합 같은 고차원적인 정신 활동이 일어나는 시간이다.
특히 DMN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기억이나 개념, 감정을 엮어주는 데 강하다.
즉 우리가 의식적으로 떠올리기 어려운 연관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집중해서 생각해도 안 떠오르던 아이디어가 잠깐 멍하니 있을 때 불쑥 떠오르곤 하는 것이다.
일종의 무의식적인 브레인스토밍이 우리도 모르게 진행되는 셈이다.
이건 단순한 과학적 메커니즘을 넘어 창의적인 사고가 왜 힘으로 밀어붙여서 되지 않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재밌는 건 우리가 멍하게 있을 때 뇌가 자동으로 아무 생각 없음 상태로 빠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매우 역동적인 생각의 흐름 속으로 들어간다는 점이다.
다만 이 흐름은 너무 자연스럽고 무방비해서 우리는 그걸 멍함이나 딴생각으로 착각할 뿐이다.
결국 멍 때리는 시간은 뇌 입장에서 보면 가장 창의적으로 연결되고 재조합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걸 허락할 여유가 있는 사람이 더 깊은 사고로 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여유를 어떻게 만들어내느냐다.
현대인의 일상은 촘촘하게 채워져 있고 틈날 때마다 스마트폰이 그 빈 공간을 메운다.
잠시도 멍해질 틈이 없도록 설계된 환경 속에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작동할 기회조차 줄어드는 셈이다.
그리고 결국 창의성은 없는 시간이 아니라 비워낸 시간 속에서 나온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는 오히려 떠오르지 않던 해결책이 산책 중에, 지하철에서 멍하니 창밖을 보며, 혹은 샤워를 하며
생각과 감정이 자연스럽게 흐를 때 스르륵 등장한다.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 ‘의도된 멍함’을 만드는 연습도 필요하다.
디지털 기기를 잠시 내려놓고 일부러 시간을 낭비하는 듯한 활동 걷기, 노트에 낙서하기, 조용히 앉아 있기를 해보는 거다.
이건 단순한 힐링이 아니라 뇌가 창의적으로 연결될 기회를 주는 설계된 공간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는 무언가를 억지로 생각해내는 게 아니라 스스로 떠오르게 할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점점 깨닫게 된다.
그 시작이 바로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면서도 의미 있다.
3. 창의성은 생각의 여백에서 피어난다
창의성은 정보의 축적만으로는 생기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많이 알아야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생각하지만 그 많은 정보는 가공되지 않으면 그냥 노이즈에 불과하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는 순간은 정보가 정리되고 느슨해지고 공간이 생길 때 일어난다.
즉, 정보를 담는 일보다 비워내는 시간이 중요할 때가 있다는 말이다.
예술가나 작가, 디자이너들이 산책을 습관처럼 갖는 이유도 여기 있다.
걷는 동안 시각 자극은 줄고 뇌는 자유롭게 떠돌며 생각의 실타래를 푼다.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 시간들이 오히려 창의성의 시작점이 된다.
여백 없이 빽빽한 캔버스에는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없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어딘가에는 생각이 흘러갈 틈이 있어야만 진짜 내 생각이 스며나올 수 있다.
즉 현대인은 멍 때리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우리 뇌는 늘 무언가를 보고, 듣고, 판단하고, 처리하느라 쉴 틈이 없다.
심지어 쉴 때조차 영상, 음악, 메시지로 계속 자극을 주고받는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일부러 만들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 하는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단 몇 분이라도 의도적으로 비워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지도 않고, 판단하지 않는 그 짧은 시간들이 오히려 하루를 훨씬 더 깊게 만들 수 있다.
책상 앞에서 한 시간 고민했던 문제도 계단을 내려가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 한 줄로 풀릴 수 있다.
그건 기적이 아니라 멍 때리는 시간을 견딘 사람에게 찾아오는 보상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게으름이 아니라 나의 뇌가 스스로 정리하고 새로 연결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일이다.
우리가 해야 할 건 잠시 멈추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창의성은 노력만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생각이 자라는 틈과 여백을 얼마나 잘 만들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불안해하지 말자.
그건 단순한 쉼이 아니라 아주 능동적인 창의의 준비다.
그리고 그 멍한 순간들 속에서 진짜 나만의 아이디어가 피어나기 시작한다.